새벽 다섯 시, 오래된 창문 틈으로 들어온 공기는 차가웠고 나는 식탁 위에 펼쳐진 봉투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봉투들 위엔 익숙한 이름들이 적혀 있었고, 그 글자들이 한참 동안 나를 가만히 눌러두었다. 가게를 닫고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계산서와 통장 내역은 줄지어 있었고, 골목 가게 불빛들은 하나둘 꺼지며 낮은 숨을 내쉬는 것 같았다. 나는 주머니 깊숙이 넣어둔 손을 빼 어제 적어둔 메모를 꺼냈다. 주소, 약속 시간, 필요한 서류 목록. 새벽에 내린 결정은 그렇게 작은 종이 위에 정리되어 있었다.
결정을 내린 날, 나는 법률 사무소의 문을 조심스럽게 밀었다. 사무실은 생각보다 차분했고, 의자는 나의 긴장을 조금씩 흡수해 주었다. 설명을 들을수록 머릿속의 잡음이 하나씩 정돈되었다. 절차의 이름들, 필요한 서류들, 앞으로의 일정에 대한 말들은 감정의 혼돈을 현실의 단계로 바꾸어 주었다. 불안은 아직 남아 있었지만, 그것은 이제 방향을 가진 불안이 되었다. 누군가와 함께 계획을 세우는 경험은, 체면과 자존심이 얽혀 있던 문제를 한 장 한 장 떼어내는 일 같았다.
개인회생은 일정한 소득이 있는 채무자가 법원이 인정한 변제계획에 따라 일정 기간 일부를 변제하면 나머지 채무를 탕감받을 수 있는 제도입니다. 채무자의 경제적 재기를 돕기 위한 절차로, 채무 조정과 달리 법원의 감독 아래에서 공식적인 회생절차가 진행됩니다.
출처: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EA%B0%9C%EC%9D%B8%ED%9A%8C%EC%83%9D https://ko.wikipedia.org/wiki/개인회생
감정은 느리게 변했다. 처음엔 부끄러움이 앞섰다. 골목 어귀에서 마주친 이웃의 눈빛이 나를 붙잡는 기분이 들었다. 빚의 무게는 숫자보다 더 큰 파편으로 일상 곳곳에 박혀 있었다. 그러나 상담을 마치고 집으로 걸어오는 길, 나는 서서히 숨을 길게 내쉬었다. 안도감이 찾아왔다. 그 안도는 문제를 해결했다는 가벼움이 아니라, 다시 호흡할 수 있다는 발견이었다. 밤새 뒤척이던 생각들이 조금은 고정되었고, 다음 날 새벽 커피를 마시는 일상의 루틴이 다시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작은 가능성들을 하나둘 세어 보았다. 가게 앞을 쓸고, 재고를 다시 정리하고, 다시 가격표를 손보는 일들. 이전처럼 손이 떨리지는 않았다.
돌아보면, 법적 절차를 택한 것은 포기와는 다른 선택이었다. 그것은 내가 무너져 내리는 장면을 그대로 두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절차를 통해 받은 설명과 기록들은 나에게 새로운 시작의 공간을 마련해 주었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누군가가 대신해 주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내 상황을 마주하고, 말로 풀어내고, 문서로 정리하는 그 행위 자체가 회복의 첫걸음이었다. 비슷한 상황에 있는 여러분도, 처음엔 막막하겠지만 작은 한 걸음이 쌓이면 일이 움직인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지금은 예전과 같은 속도는 아니지만 매일 아침 커피를 내리며 가게 문을 열었다. 손이 기억하는 일상, 손님과의 짧은 농담, 계산대 옆에 놓인 작은 메모들. 그 메모들은 여전히 계획의 일부다. 회복은 한 번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었다. 매일을 이어가는 작은 일들이 모여 마음의 온도를 조금씩 올려 주었다. 나는 가끔 새벽 공기 속에서 그날의 결정을 떠올린다. 절망이 일상을 빼앗아 갔을 때, 다시 일상을 찾아오는 일은 느리고 꾸준한 과정이라는 것을. 그 과정에서 나는 나 자신에게 더 관대해졌다. 여러분도 혹시 길을 잃은 듯할 때, 아주 작은 일상으로 돌아와 숨을 고르는 시간을 허락하길 바란다. 그 시간이 모여 다시 걸을 수 있는 힘이 되어 주었다.